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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옛 건축 성당 기념우표와 우리나라의 성당은 무엇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먼저 기념우표에서 다룬 성당은, '천주교 서울 약현성당',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천주교 전주 전동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입니다. 기념우표는 전지와 시트 형태로 발행되어 외부와 내부를 모두 감상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옛 건축(성당) 기념우표

우표명칭 : 한국의 옛 건축(성당)

종수 : 8

발행일 : 2022년 4월 14일

발행량 : 640,000장(시트 400,000장)

디자인 : 천주교 서울 약현성당,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천주교 전주 전동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1. 약현성당(藥峴聖堂) - 서울의 역사와 아름다움

약현성당(藥峴聖堂)은 서울 중구 중림동에 자리한 중요한 가톨릭 교회의 성당으로, 대한민국의 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림동성당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건축의 과정

천주교가 조선에 소개된 것은 조선 시대 선조와 광해군 시기로 rem니스트국의 연경(燕京) 사신을 통해 서학(西學)으로 전해졌습니다. 천주교는 1831년에 중국 북경교구(北京敎區)에서 조선교구(朝鮮敎區)로 독립하였으며,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韓佛修好條約)이 체결되면서 기독교 선교활동이 활발해지고 천주교세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서울의 천주교 신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1887년에는 잠배(紫岩)의 순랫골 [巡和洞]에 강당을 지어 일반 서민을 교육했습니다. 이 강당의 이름이 약현성당이었는데, 이는 성당이 위치한 언덕의 이름인 "서대문 밖 약현(藥峴)"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후에는 신부가 책임자로 부임하여 합동(蛤洞)에 있는 대지를 구입하고, 1891년 10월 27일에 성당 건축의 정초식(定礎式)을 거행했습니다. 1892년에는 외부공사, 바닥공사, 건축공사가 진행되었고, 1893년에는 실내장식을 마치고, 종이 도착하여 타종되었습니다. 1893년 9월 25일에는 성당 강복식(降福式)이 거행되어 이 성당의 건립이 완료되었습니다.

건축의 경위

약현성당이 세워진 장소는 천주교의 역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한국인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李承薰)의 집과 인접한 곳으로, 1801년, 1839년, 1866년 천주교 수난 시기에 44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당의 설계는 프랑스 신부인 코스트(E. G. Coste, 한국명: 고의선- 高宜善)가 맡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했으며, 주임신부인 두쎄(Doucet) 신부가 감독했습니다. 코스트 신부는 1868년부터 동아시아에서 건축 일을 하였으며, 1885년 한불조약이 체결되기 전에 내한하여 조선교구 경리부에 소속되었습니다. 그는 약현성당과 명동성당 등 서울에서 천주교 건축을 주도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건축물의 특징

약현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특징을 결합한 건물로, 평면은 연면적 120평의 장방형이며, 네이브와 아일의 구분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내부는 번잡하지 않고 아담하며 장중하며, 목재 구조와 함석지붕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 건물은 한국 최초의 양식 성당 건물로서 교회 건축사적 가치가 크며, 서양식 성당 건축의 중요한 표본 중 하나입니다.

 

2. "한옥 아름다움과 역사의 숨결, 강화성당"

한국의 다양한 종교와 역사적 사건들이 그릇된 중세 시대의 그림처럼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그중에서도 강화성당은 대한성공회와 한국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아름다운 한옥 구조는 고요한 순간을 되새기게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강화성당의 역사와 건축물 특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건축의 과정 및 경위

강화성당의 역사는 1896년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대한성공회 초대 주교인 찰스 존 코프(Bishop Charles John Corfe, 한국 이름 고요한)가 1900년 11월 15일에 건립하였습니다. 이 성당은 대한성공회 내에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며, 또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교회 건물 중 하나입니다. 1915년에는 김희준 신부가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성공회 사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한글로 기록된 사제 서품장은 예배당 내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건축물의 특징

강화성당은 한옥 형식으로 건축되어 있으며, 외관은 불교사찰의 형태를 일부 따르고 있습니다. 외삼문과 내삼문, 성당 건물, 사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판에는 "성공회 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이라는 글이 한문으로 적혀 있습니다. 성당 내부는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10칸의 바실리카식 평면구성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강화성당은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한옥 형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은 고요한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3. "전동성당: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

전동성당은 대한민국 전주시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아름다운 성당으로, 그 역사와 아름다움으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동성당의 역사, 건축, 현재 상황 등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건축의 역사

전동성당은 1981년 9월 25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 로마 가톨릭 성당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는 훨씬 더 오래됩니다. 이곳은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들이 희생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호남 지역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였습니다.

건축물의 특징

전동성당은 호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의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이 성당은 중앙의 종탑과 비잔틴 양식의 뾰족 돔을 특징으로 하며, 성당 내부의 석조 기둥도 비잔틴 양식이 녹아 있어 곡선미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화강암과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지어져, 석재와 목재는 지역 자원을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4.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서울의 역사적인 성당

서울성공회성당은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 위치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근대 시대에 건립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1926년 5월 2일에 건립되었으며,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건축의 특징

서울성공회성당은 화강석과 붉은 벽돌로 조립된 조적조 구조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로, 대지 면적은 1,346평이며 건물 면적은 300평입니다. 이 건물은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1978년에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성당의 평면은 "+"자형을 갖고 있으며, 중앙에 위치한 신랑(신도들이 모이는 곳)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조 트러스로 지지되어 있는 맞배지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측랑(옆복도)은 1층 높이에 경사지붕을 가지고 있어 내부 공간의 위계를 외부에서도 알 수 있게끔 디자인되었습니다.

건축의 역사 이 건물은 1890년에 한국에 온 초대주교 코프(Corfe, C.G.)가 1922년에 착공하여 1926년 5월 2일에 완공한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서양 양식으로 설계된 본격적인 건축양식의 성당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건축

성당의 아름다운 디자인은 중앙 종탑, 작은 종탑, 그리고 후진(건물 동쪽 끝에 내민 반원형 부분)의 조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랑(옆복도) 부분은 붉은 벽돌로 마감되어 있으며, 정면에는 아치 문과 장미창이, 측면에는 반원형 아치가 장식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아름다운 조명이 내부로 들어옵니다.

또한, 수랑의 후반부는 화강석을 사용하여 아치 구조를 형성하고 벽을 쌓거나 기둥을 세워 다양한 조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물의 벽체와 지붕 경계에는 코니스와 모딜리온이 촘촘하게 배열되어 건물에 율동감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란?

성공회(성공교)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단 중 하나입니다. 이 교단은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생성, 발전, 그리고 분열의 과정을 겪었으며 다양한 신앙 전통을 수용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그리스도교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1054년 분열 이후에 발전하였으며, 16세기 종교개혁으로 더 큰 분열을 경험했습니다. 이 분열은 서방교회 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그 결과로 천주교,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 등으로 나뉘었습니다. 성공회는 이러한 분열의 역사와 이유를 이해하고, 그 분열이 가진 창조적인 의미와 아픔을 인정하며 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는 성공회(聖公會)라는 교단 명칭을 사용하며, 이 이름은 니케아 신경과 사도신경에 나오는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교단은 한자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도 활동하며, 다른 국가에서는 '에피스코팔 처치' 또는 '앵그리칸 처치'로 불리기도 합니다.

성공회는 다양한 신앙 전통과 신앙의 개성을 존중하며, 국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교단은 개혁된 가톨릭, 교황 없는 천주교, 교리에 너그러운 정교회, 그리고 가톨릭 전통을 유지하는 개신교로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성공회는 '앵그리칸 커뮤니언'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단일한 교단으로서 세계에서 천주교와 러시아 정교회 다음으로 큰 교세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국가와 문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공회의 특징

1. 정통성과 복음의 수호

성공회는 그리스도교 역사와 전통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으며, 성서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곡해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오랜 교회 전통을 바탕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더욱 새롭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성공회는 많은 탁월한 신약학자와 신부들을 배출해 왔으며, 그들은 신앙을 굳건히 지키며 믿음을 실천합니다.

2. 이성적인 신앙

성공회는 이성을 통해 신앙을 더욱 깊고 풍성하게 해 주는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화론의 찰스 다윈과 소설가 C. S. 루이스는 성공회 신자로서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가졌으며, 현대에도 과학자와 지성인들이 성공회에서 신앙의 깊이를 탐구합니다.

3. 열린 신앙 공동체

성공회는 맹목적 신앙을 거부하며, 정직하게 신앙을 고민하고 나누는 열린 교회입니다. 신앙을 고민하는 모든 이와 함께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동의하는 공동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4.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교회

성공회는 신앙의 실천을 중요하게 여기며, 평화와 생명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는 성공회 대주교로서 인종분리정책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평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대천덕 신부는 성공회 사제로서 경제적 정의를 실천하는 모범적인 예로써 활약했습니다. 성공회는 현대 신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정통성과 이성, 열린 공동체, 정의와 평화를 중요시하는 교회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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